이상휴(李相休)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0C1D734B1664X0 |
자(字) | 휴경(休卿) |
생년 | 1664(현종 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후번(李后藩)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상휴(李相休)
1664년(현종 5)~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휴경(休卿)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거주지는 경성(京城: 현 서울)이다.
증조부는 이기설(李基卨)이고, 조부는 이돈실(李惇實)이며,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이후번(李后藩)이다. 외조부는 신형구(申衡耉)이다. 형은 이상령(李相齡)‧이상경(李相璟)이고, 동생은 이상도(李相度)이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에 생원 2등 13위로 합격하였고, 1693년(숙종 19) 식년시에서 병과 16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사재감봉사(司宰監奉事)‧종묘직장(宗廟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708년(숙종 34) 임금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조참례(朝參禮)를 행할 때에 사재감봉사로서 주색을 경계할 것을 청하였다. 또한 덕을 닦고 조세를 마음대로 거두는 것을 금지하며, 절수(折受)의 혁파, 송사를 공평하게 하는 일 등을 상소하여 임금의 비답을 받았다.
1709년(숙종 35) 종묘직장으로서 종묘서(宗廟署)와 사직서(社稷署)의 ‘서(署)’라는 명칭을 ‘전(殿)’으로 고칠 것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더불어 편액을 걸 것과 북한산(北漢山)‧홍복(洪福) 두 곳에 성을 쌓을 것도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증조부는 이기설(李基卨)이고, 조부는 이돈실(李惇實)이며,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이후번(李后藩)이다. 외조부는 신형구(申衡耉)이다. 형은 이상령(李相齡)‧이상경(李相璟)이고, 동생은 이상도(李相度)이다.
1684년(숙종 10) 식년시에 생원 2등 13위로 합격하였고, 1693년(숙종 19) 식년시에서 병과 16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사재감봉사(司宰監奉事)‧종묘직장(宗廟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708년(숙종 34) 임금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조참례(朝參禮)를 행할 때에 사재감봉사로서 주색을 경계할 것을 청하였다. 또한 덕을 닦고 조세를 마음대로 거두는 것을 금지하며, 절수(折受)의 혁파, 송사를 공평하게 하는 일 등을 상소하여 임금의 비답을 받았다.
1709년(숙종 35) 종묘직장으로서 종묘서(宗廟署)와 사직서(社稷署)의 ‘서(署)’라는 명칭을 ‘전(殿)’으로 고칠 것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다. 더불어 편액을 걸 것과 북한산(北漢山)‧홍복(洪福) 두 곳에 성을 쌓을 것도 청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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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