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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서(尹宗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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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효승(孝承)
생년1664(현종 5)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해남(海南)
활동분야유생
윤이구(尹爾久)
생부윤이후(尹爾厚)

[상세내용]

윤종서(尹宗緖)
1664년(현종 5)~미상. 조선 중기 유생. 자는 효승(孝承)이다. 본관은 해남(海南)이다.

부친은 윤이구(尹爾久)이고, 생부는 소위장군(昭威將軍)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 윤이후(尹爾厚)이다. 형은 윤창서(尹昌緖)‧윤흥서(尹興緖)이고, 동생은 윤두서(尹斗緖)‧윤광서(尹光緖)이다.

1691년(숙종 17) 증광시에서 생원 3등 44위로 합격하였다.

1696년(숙종 22)에 장형(張炯)의 묘에 나무인형을 묻어서 서인들을 음해하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채제윤(蔡悌胤) 등은 이 사건이 동궁(東宮)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것을 염려하여 음해의 진상을 규명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평소 글을 잘 짓는다는 평판을 받았던 그는 채제윤의 권유에 따라 소초(疏草)를 짓게 되었다. 이후 채제윤과 상소를 올린 강오장(姜五章) 등이 투옥되어 국문(鞠問)을 받았는데, 강오장의 공초 중, 그의 가담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일을 계기로 그 또한 의금부(義禁府)에 투옥되었다. 이후 임금을 음해하려고 했다는 혐의를 받고, 거제(巨濟)로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