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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용(金汝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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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천성(天成)
생년1662(현종 3)
졸년1735(영조 11)
시대조선중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학생 > 유생

[상세내용]

김여용(金汝鎔)
1662년(현종 3)∼1735년(영조 11). 조선 중기 유생. 자는 천성(天成)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증조부는 증좌승지(贈左承旨) 김률(金瑮)이고, 조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 김추길(金秋吉)이다. 부친 호조참의(戶曹參議) 김성구(金聲久)와 모친 영침랑(英寢郞) 권목(權霂)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검토공(檢討公) 김여건(金汝鍵)과 동생 김여방(金汝鈁)‧김여집(金汝鏶)이 있다. 부인은 조덕윤(趙德胤)의 딸 풍양조씨(豊壤趙氏)이다.

어려서부터 맏형 김여건에게서 공부를 배웠다.

1696년(숙종 22) 식년시 생원 3등 59위로 합격하였다. 1697년(숙종 23) 맏형 김여건이 조사석(趙師錫)의 탄핵으로 귀양지에서 죽자 애통해하면서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여도 정치적인 문제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았으나, 가난한 집안과 연로한 부모를 위하여 벼슬살이를 하며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였다. 비록 자신은 대책문(對策文)으로, 동생 김여집은 명경(明經)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받았지만 대과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양친이 돌아가신 후로는 과거에 뜻을 두진 않았으나 집안 살림을 유지하기 위해 수차례 시험을 보았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후론 조카와 아들에게 과거 응시를 권유하여 몇 명의 조카는 초시에 합격하였고, 아들 김경침(金景沉)은 대과에 급제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요절하자 상심하여 심하게 술을 마시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문헌]

訥隱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