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金宙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8FCC77CB1629X0 |
자(字) | 관천(冠千) |
생년 | 1629(인조 7) |
졸년 | 1690(숙종 1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상세내용]
김주일(金宙一)
1629년(인조 7)∼1690년(숙종 16). 조선 중기 유생. 자는 관천(冠千)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거주지는 충청남도 공주(公州)이다.
증조부는 군수(郡守) 증좌승지(贈左承旨) 김덕윤(金德潤)이고, 조부는 김세형(金世亨)이다. 부친 현령(縣令) 김후(金垕)와 모친 참판(參判) 권첩(權怗)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김우일(金宇一)과 동생 김굉일(金宏一)이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윤상거(尹商擧)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고, 둘째 부인은 이만헌(李萬憲)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어려서 외삼촌 월천(月川) 권준(權儁)에게 학문을 배우고, 자라서는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은 이후로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공부하였으며, 과거시험을 볼 때에도 득실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1663년(현종 4) 식년시 진사 3등 44위로 합격한 후, 여러 차례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 임명되지 못하자, 명재(明齋) 윤증(尹拯)으로부터 재주는 있으나 명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게서 배웠는데, 송시열이 기해예송(己亥禮訟)에서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慈懿大妃: 조대비(趙大妃))의 복제를 기년복(朞年服)으로 주장하며 사종설(四種說)의 체이부정(體而不正)을 인용하였는데, 이에 스승 송시열과 다소 다른 의견을 내었다가 송시열의 화를 돋우고 주변의 의심을 샀다.
묘는 충청남도 공주에 있다.
증조부는 군수(郡守) 증좌승지(贈左承旨) 김덕윤(金德潤)이고, 조부는 김세형(金世亨)이다. 부친 현령(縣令) 김후(金垕)와 모친 참판(參判) 권첩(權怗)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김우일(金宇一)과 동생 김굉일(金宏一)이 있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윤상거(尹商擧)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이고, 둘째 부인은 이만헌(李萬憲)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어려서 외삼촌 월천(月川) 권준(權儁)에게 학문을 배우고, 자라서는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은 이후로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공부하였으며, 과거시험을 볼 때에도 득실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1663년(현종 4) 식년시 진사 3등 44위로 합격한 후, 여러 차례 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 임명되지 못하자, 명재(明齋) 윤증(尹拯)으로부터 재주는 있으나 명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에게서 배웠는데, 송시열이 기해예송(己亥禮訟)에서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慈懿大妃: 조대비(趙大妃))의 복제를 기년복(朞年服)으로 주장하며 사종설(四種說)의 체이부정(體而不正)을 인용하였는데, 이에 스승 송시열과 다소 다른 의견을 내었다가 송시열의 화를 돋우고 주변의 의심을 샀다.
묘는 충청남도 공주에 있다.
[참고문헌]
敬庵遺稿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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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