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순(李應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51C21CU9999X0 |
자(字) | 선수(善受)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원주(原州[舊]) |
활동분야 | 무관 |

부 | 이욱(李旭) |

[상세내용]
이응순(李應順)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무관. 자는 선수(善受)이다. 본관은 원주(原州[舊])이다.
부친은 이욱(李旭)이다.
1589년(선조 22)에 증광시 병과 10위로 무과 급제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여 선조가 평안도로 피난 갔을 때 임금을 호위하였다. 피난 중 안주(安州) 청천강(淸川江)에 이르렀는데 강물이 불어나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동생 이응인(李應寅)과 함께 어가(御駕)를 떠메고 강을 건넜다. 이후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공록이 내려졌고, 익흥군(益興君)에 봉군(封君)되었으며, 인조 때에는 좌의정(左議政)에 증직되었다.
부친은 이욱(李旭)이다.
1589년(선조 22)에 증광시 병과 10위로 무과 급제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여 선조가 평안도로 피난 갔을 때 임금을 호위하였다. 피난 중 안주(安州) 청천강(淸川江)에 이르렀는데 강물이 불어나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동생 이응인(李應寅)과 함께 어가(御駕)를 떠메고 강을 건넜다. 이후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공록이 내려졌고, 익흥군(益興君)에 봉군(封君)되었으며, 인조 때에는 좌의정(左議政)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여지도서』
『기축증광용호방목(己丑增廣龍虎榜目)』
『기축증광용호방목(己丑增廣龍虎榜目)』
[집필자]
전진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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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