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수(柳仁洙)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20C778C218U9999X0 |
| 자(字) | 학원(學源)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문화(文化)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유효중(柳孝中)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인수(柳仁洙)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학원(學源)이다.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증조부는 유원현(柳元顯)이고, 조부는 유형(柳衡)이며, 부친은 유효중(柳孝中)이다. 외조부는 박경신(朴景愼)이고, 처부는 김륜(金崙)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 생원 2등 18위로 합격하였고, 같은 해 증광시 진사 3등 25위로 합격하였다. 1513년(중종 8)에는 식년시에 응시하여 병과 14위로 문과 급제했다.
1526년(중종 21)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임명되었으나, 인물이 용렬하여 예를 거행하는 관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사헌부(司憲府)로부터 탄핵을 당하였다. 1535년(중종 30)에 함경남도 안변부사(安邊府使)로 있었을 때 서경(署經: 현 일종의 신원조회)을 세 번이나 하지 않았다는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아 체차(遞差)되었다. 같은 해 10월, 병이 들었고, 시비를 가릴 줄 모르는 인물이라 종친들의 땅을 규찰하는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에 맞지 않는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다음날 체차되었다. 1537년(중종 32)에 사섬시정(司贍寺正)에 임명되었으나 늙고 병든 몸에 정신까지 흐리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었다. 같은 해에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에 임명되었으나 중국 사신이 와서 성균관의 공자 사당을 참배할 경우 늙고 병든 몸으로 예의를 차리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사헌부가 탄핵하여 재차 체직되었다. 대관재(大觀齋) 심의(沈義)가 쓴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에 그의 편지글이 실려 있다.
증조부는 유원현(柳元顯)이고, 조부는 유형(柳衡)이며, 부친은 유효중(柳孝中)이다. 외조부는 박경신(朴景愼)이고, 처부는 김륜(金崙)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 생원 2등 18위로 합격하였고, 같은 해 증광시 진사 3등 25위로 합격하였다. 1513년(중종 8)에는 식년시에 응시하여 병과 14위로 문과 급제했다.
1526년(중종 21) 예조정랑(禮曹正郞)에 임명되었으나, 인물이 용렬하여 예를 거행하는 관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사헌부(司憲府)로부터 탄핵을 당하였다. 1535년(중종 30)에 함경남도 안변부사(安邊府使)로 있었을 때 서경(署經: 현 일종의 신원조회)을 세 번이나 하지 않았다는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아 체차(遞差)되었다. 같은 해 10월, 병이 들었고, 시비를 가릴 줄 모르는 인물이라 종친들의 땅을 규찰하는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에 맞지 않는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다음날 체차되었다. 1537년(중종 32)에 사섬시정(司贍寺正)에 임명되었으나 늙고 병든 몸에 정신까지 흐리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었다. 같은 해에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에 임명되었으나 중국 사신이 와서 성균관의 공자 사당을 참배할 경우 늙고 병든 몸으로 예의를 차리는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사헌부가 탄핵하여 재차 체직되었다. 대관재(大觀齋) 심의(沈義)가 쓴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에 그의 편지글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집필자]
박경이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