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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준(黃允峻)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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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겸(子謙)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장수(長水)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섬(黃蟾)
조부황사장(黃事長)
증조부황치신(黃致身)
외조부이구경(李球卿)

[상세내용]

황윤준(黃允峻)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겸(子謙)이고,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판중추부사 황치신(黃致身)의 증손으로, 조부는 황사장(黃事長)이고, 부친은 증병조판서 황섬(黃蟾)이며, 모친은 이구경(李球卿)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1517년(중종 1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사간원정언을 거쳐 1524년(중종 19) 사간원지평이 되었다. 다음 해인 1525년 사헌부지평이 되었으며 승지들이 근밀한 자리에 있으면서 중요한 사안을 바른대로 계달하지 못하는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청하자 왕이 받아들였다. 같은 해 세자시강원문학, 사헌부지평을 거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526년(중종 21)에는 박소(朴紹)의 송사와 관련하여 자택에서 불미스런 소동이 있었으므로 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청을 4번이나 올렸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1527년(중종 22) 이줄(李茁)의 일을 왕에게 보고할 때 사헌부 내 관원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자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사헌부 관원 모두가 체직되면서 그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직첩(職牒: 관직 임명사령장)을 환급받고 장령이 되었으며 부경(赴京: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일)하는 행차의 짐이 많아 군마가 지치는 폐단을 시정하도록 건의하였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司馬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