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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창(洪慶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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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복부(福夫)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계강(洪係江)
조부홍사제(洪師悌)
증조부홍명(洪溟)
처부우정(禹挺)
외조부이효동(李曉東)

[상세내용]

홍경창(洪慶昌)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복부(福夫)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홍명(洪溟)의 증손으로, 조부는 홍사제(洪師悌)이고, 부친은 홍계강(洪係江)이며, 모친은 이효동(李曉東)의 딸이다. 부인은 우정(禹挺)의 딸이다. 생원으로 충순위(忠順衛)에 들어가 5품에 올랐다.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출사하였다. 이듬해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발탁되었고, 곧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비루하게 생원으로 충순위에 들어갔으며, 급제 직후 이조(吏曹)에 나아갔다가 예에 어긋난 행동으로 모욕을 당했다는 이유로 사간원의 서경(署經: 인사 이동에서 사헌부와 사간원의 서명을 받는 제도)을 받지 못하고 교체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정언에 제수되었다. 1503년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을 거쳐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승직하였다. 1506년(중종 1)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재직 중에 탐오(貪汚)하고 정사를 소홀히 한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1510년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에 서용(敍用: 면직된 사람이나 서자 등 신분 낮은 이를 품계를 한정하여 다시 관직에 등용함)되었다. 이듬해 이천도호부사(利川都護府使) 재직 중 성품이 탐오하다는 탄핵을 받고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에 좌천되었다. 1517년 사도시부정(司導寺副正) 재직 중 다시 탐오함이 지적되면서 종묘서령(宗廟署令)으로 좌천되고, 다시 한 번 이전의 탐학과 근무태만으로 탄핵되면서 교체되었다가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南陽洪氏世譜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