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상(姜履相)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C15C774C0C1B1656X0 |
생년 | 1657(효종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진주(晉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강석창(姜碩昌) |
[상세내용]
강이상(姜履相)
1657년(효종 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부친은 종성부사 강석창(姜碩昌)이다.
1696년(숙종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699년에 정언이 되고, 이듬해 지평을 역임하였다.
1700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는데, 정사 이광하(李光夏)가 청나라에서 객사하였는데도 이를 정성껏 치상하지 않았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1705년에 다시 기용되어 사서가 되었으며, 지평‧정언을 거쳐 양덕현감으로 나갔다.
이듬해, 앞서 1701년의 신사무옥을 다스릴 때, 낭관으로서 동궁모해(東宮謀害)의 넉자를 삭제한 사실이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1711년 소론이 실각하자 풀려났다.
부친은 종성부사 강석창(姜碩昌)이다.
1696년(숙종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699년에 정언이 되고, 이듬해 지평을 역임하였다.
1700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는데, 정사 이광하(李光夏)가 청나라에서 객사하였는데도 이를 정성껏 치상하지 않았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
1705년에 다시 기용되어 사서가 되었으며, 지평‧정언을 거쳐 양덕현감으로 나갔다.
이듬해, 앞서 1701년의 신사무옥을 다스릴 때, 낭관으로서 동궁모해(東宮謀害)의 넉자를 삭제한 사실이 발각되어 유배되었다가 1711년 소론이 실각하자 풀려났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이희권(李羲權)
명 : "이상(履相)"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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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