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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귀(洪聖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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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국명(國明)
생년1626(인조 4)
졸년1672(현종 13)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홍준(洪浚)

[상세내용]

홍성귀(洪聖龜)
1626년(인조 4)~1672년(현종 1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국명(國明)이다. 본관은 남양(南陽[唐])이다.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부친은 성균진사(成均進士) 홍준(洪浚)이다. 외조부는 한옥(韓玉)이고, 처부는 한영(韓穎)이다.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형은 정평부사(定平府使) 홍석구(洪錫龜)이고, 동생은 홍유구(洪有龜)‧홍서구(洪瑞龜)이다.

1642년(인조 20) 식년시에서 진사 3등 69위로 합격하였고, 1650년(효종 1) 증광시에서 병과 7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문천군수(文川郡守)‧선산부사(善山府使)‧담양부사(潭陽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63년(현종 4) 의성현령(義城縣令)으로 재임하던 중 현지에서 유황석(硫黃石)을 발견하고 채취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말을 하사받았다. 1668년(현종 9)에는 담양부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홍성구(洪聖龜)의 부친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廢母論)을 지지했던 이조정랑(吏曹正郞) 한옥(韓玉)의 사위였던바 선대(先代)의 죄를 물어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에 형 홍석구가 왕의 행행(行幸)에서 부친의 억울함을 상언(上言)하였고, 결국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