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윤(愼景尹)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ACBDC724B1624X0 |
자(字) | 중임(仲任) |
생년 | 1624(인조 2) |
졸년 | 1704(숙종 3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거창(居昌) |
활동분야 | 문관 |

부 | 신영건(愼英健) |
생부 | 신영진(愼英振) |
조부 | 신수신(愼守身) |
증조부 | 신유(愼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경윤(愼景尹)
1624년(인조 2)∼1704년(숙종 30)(주1)
. 조선 중기 문관. 자는 중임(仲任)이다.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증조부는 신유(愼有)이고, 조부는 신수신(愼守身)(주2)
이다. 부친은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 통훈대부(通訓大夫)를 지낸 신영건(愼英健)이고, 생부는 신영진(愼英振)이다. 형은 신태윤(愼泰尹)(주3)
이다.
1657년(효종 8) 식년시에서 진사 2등 14위로 합격하였다. 1666년(현종 7) 별시 문과에서 병과 1위로 급제하였고, 정6품 사과(司果) 등의 여러 관직을 지냈다.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역임하였고, 1681년(숙종 7) 12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7월 거대한 메뚜기 떼가 논밭을 습격하여 농사를 망치게 된 것에 이어 소 전염병이 유행하는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게 되어 제주목사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684년(숙종 10) 4월까지 제주목사를 지냈고, 부윤을 거쳐 동지중추부사 자리에 올랐다.
졸년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 106]) 내의 급제 기록을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 |
증조부는 신유(愼有)이고, 조부는 신수신(愼守身)(주2)
조부 |
「『광해군일기』 141권, 광해군 11년(1619) 6월 19일」 기사를 참고하여 조부명을 수정. |
안항 |
『거창신씨세보(居昌愼氏世譜)』(1737)를 참고하여 형 "신대윤(愼大尹)"을 "신태윤(愼泰尹)"으로 수정. |
1657년(효종 8) 식년시에서 진사 2등 14위로 합격하였다. 1666년(현종 7) 별시 문과에서 병과 1위로 급제하였고, 정6품 사과(司果) 등의 여러 관직을 지냈다.
김해부사(金海府使)를 역임하였고, 1681년(숙종 7) 12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7월 거대한 메뚜기 떼가 논밭을 습격하여 농사를 망치게 된 것에 이어 소 전염병이 유행하는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게 되어 제주목사로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684년(숙종 10) 4월까지 제주목사를 지냈고, 부윤을 거쳐 동지중추부사 자리에 올랐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CD-ROM 司馬榜目
CD-ROM 司馬榜目
[집필자]
문혜경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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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