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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창(金世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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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기(德基)
생년1624(인조 2)
졸년1651(효종 2)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舊])
활동분야유생/역모자
김련(金鍊)

[상세내용]

김세창(金世昌)
1624년(인조 2)~1651년(효종 2). 조선 중기 유생‧역모자. 자는 덕기(德基)이다. 본관은 안동(安東[舊])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조부는 김자점(金自點)이고, 부친 낙평군(洛平君)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김련(金鍊)과 충익공(忠翼公) 이시백(李時白)의 딸 연안이씨(延安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 효명옹주(孝明翁主)와 혼인한 낙성위(洛城尉) 김세룡(金世龍)이 있다.

1648년(인조 26) 식년시에서 생원 1등 2위, 진사 3등 57위로 합격하였다.

1651년(효종 2) 효종이 즉위한 후 영의정에서 물러나고 권력을 잃으면서 조부 김자점(金自點)이 앙심을 품고 청나라에 효종의 북벌정책(北伐政策)에 대한 계획을 알려 북벌정책을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때 삼촌 김익(金釴)이 심지연(沈之演)‧김응해(金應海)‧황헌(黃瀗)‧기진흥(奇震興) 등과 함께 북벌론을 찬성하던 원두표(元斗杓)‧송시열(宋時烈)‧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 등을 없애버리고 숭선군(崇善君) 이징(李徵)을 추대하여 정권을 되찾으려는 역모 사건을 꾸민 사실이 조정에 알려졌다. 김세창(金世昌)도 이 역모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되었고, 외조부 이시백이 역모 사건에 연루된 외손자의 죄에 대해 대신 사죄하며 국문(鞠問)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아뢰었으나, 임금으로부터 윤허를 받지 못하여 외손자가 연루된 사건의 국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일로 김자겸 일가가 참수될 때, 조부‧부친‧낙성위 김세룡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