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빈(金{賓/灬})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AE40BE48FFFFB1621X0
자(字)빈여(賓如)
자(字)빈여(賓餘)
호(號)갈천(葛川)
생년1621(광해군 13)
졸년1694(숙종 20)
시대조선중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빈(金{賓/灬})
1621년(광해군 13)∼1694년(숙종 2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빈여(賓如)‧빈여(賓餘)이고, 호는 갈천(葛川)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門面)이다.

증조부는 김복일(金復一)이고, 조부는 김지(金潪)이며, 부친 김시통(金是捅)의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장여핵(張汝翮)이고, 처부는 김영(金韺)이다. 형 김언(金𤑅)과 동생 김정(金▣)‧김노(金魯)가 있다.

1651년(효종 2) 식년시 진사 3등 53위로 합격하였고, 1657년(효종 8) 식년시 병과 16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방직으로 경주부사(慶州府使)‧광주목사(光州牧使)‧나주목사(羅州牧使)‧한성부좌우윤(漢城府左右尹)을, 중앙직으로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예조좌랑(禮曹佐郞)‧도승지(都承旨)‧예조참판(禮曹參判)을 비롯하여 4조의 참판 등을 지냈으며, 만년에는 기로소에 들어갔다.

1671년(현종 12) 문경현감(聞慶縣監)으로 있으면서 백성의 곤란함을 밤낮으로 돌봤기 때문에 큰 가뭄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하여 문경 백성들에 의해 선정비가 세워졌다.

겸손하고 부지런한 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벼슬에도 욕심내지 않고 모든 일을 정성껏 소신대로 처리하였다. 백성들에게는 청렴하고 분별 있으며 자비롭고 치밀하게 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이로 인해 왕의 신임을 받았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