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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명(姜文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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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저(公著)
생년1613(광해군 5)
졸년1646(인조 24)
시대조선중기
본관금천(衿川)
활동분야왕족
강원기(姜遠期)
생부강석기(姜碩期)

[상세내용]

강문명(姜文明)
1613년(광해군 5)~1646년(인조 24). 조선 후기 왕족. 자는 공저(公著)이다. 본관은 금천(衿川)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부친은 강원기(姜遠期)이고, 생부 자헌대부(資憲大夫) 행사헌부대사헌(行司憲府大司憲) 강석기(姜碩期)와 모친 신씨(申氏)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처부는 이조참판(吏曹參判) 김광현(金光炫)이다. 형은 강문성(姜文星)이고, 동생은 강문두(姜文斗)‧강문벽(姜文璧)‧강문정(姜文井)이며, 여동생은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인 강빈(姜嬪)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시 진사 3등 28위로 합격하였다.

1646년(인조 24) 소현세자의 빈인 여동생이 평소 소용조씨(昭容趙氏)를 미워하더니 음식물에 독약을 넣었다는 모함을 받아 사사되었다. 당시 소현세자의 아들 이석철(李石鐵) 등도 연루자로 지목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이때 여동생인 세자빈의 장삿날로 정해진 날짜가 불길하다며 형과 함께 지관(地官)인 최남(崔楠)을 찾아가 협박하는 등 오만방자하게 굴었다가 먼 섬으로 유배를 갔다. 이후, 다시 서울로 불려가 고문을 받던 중 매를 맞다가 형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1718년(숙종 44) 모친 신씨를 복작시킬 때 강문명(姜文明)도 함께 복관(復官)되었다. 1786년(정조 10) 숙종 때 강문명의 묘에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던 것을 정조가 해제시켜주어 이때부터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仁祖實錄
肅宗實錄
正祖實錄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