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기(韓震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55CC9C4AE30B1610X0 |
자(字) | 치규(稚圭) |
생년 | 1610(광해군 2)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청주(淸州) |
활동분야 | 문신 |

부 | 한문두(韓文斗) |

[상세내용]
한진기(韓震琦)
1610년(광해군 2)∼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치규(稚圭)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증조부는 한경복(韓景福)이고, 조부는 한광주(韓光胄)이다. 부친 한문두(韓文斗)와 모친 심인진(沈仁禛)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경헌(李景憲)의 딸이다.
1649년(인조 27) 별시에서 병과로 문과 급제하였다.
1653년(효종 4)에는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영의정(領議政) 정태화(鄭太和)로부터 업무처리가 뛰어난 인재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사헌부(司憲府)에서 올린 상소 중 이광재(李光載)‧조복양(趙復陽) 등에 대한 내용에 지나친 점이 있었으므로, 사헌부에 소속된 관리들이 모두 외직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한진기(韓震琦) 또한 이로 말미암아 1655년(효종 6)에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임명되었다. 1657년(효종 8)에는 재차 내직으로 복귀하여, 승지(承旨)에 임명되었다.
증조부는 한경복(韓景福)이고, 조부는 한광주(韓光胄)이다. 부친 한문두(韓文斗)와 모친 심인진(沈仁禛)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경헌(李景憲)의 딸이다.
1649년(인조 27) 별시에서 병과로 문과 급제하였다.
1653년(효종 4)에는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영의정(領議政) 정태화(鄭太和)로부터 업무처리가 뛰어난 인재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사헌부(司憲府)에서 올린 상소 중 이광재(李光載)‧조복양(趙復陽) 등에 대한 내용에 지나친 점이 있었으므로, 사헌부에 소속된 관리들이 모두 외직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한진기(韓震琦) 또한 이로 말미암아 1655년(효종 6)에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임명되었다. 1657년(효종 8)에는 재차 내직으로 복귀하여, 승지(承旨)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孝宗實錄
孝宗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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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