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항(成震恒)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9C4D56DB1609X0 |
자(字) | 자구(子久) |
호(號) | 화은(華隱) |
생년 | 1609(광해군 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성여백(成汝栢) |
조부 | 성람(成灠) |
처 | 장수황씨(長水黃氏) |
처부 | 황수지(黃修之) |

[상세내용]
성진항(成震恒)
1609년(광해군 1)∼미상.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구(子久), 호는 화은(華隱).
조부는 청죽(聽竹) 성람(成灠)이며, 부친은 선교랑(宣敎郞)을 지낸 성여백(成汝栢)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깨닫는 것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1639년(인조 17)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27위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는데, 초연(愀然)한 모습으로 즐거운 기색이 없이 말하기를 “백패(白牌)에 위호(僞號)가 쓰였는데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가 이것을 전해 듣고 그를 의롭게 여겨, 백패에 위호를 쓰지 않도록 건청(建請)했다고 한다.
1659년(효종 10) 1차 예송논쟁인 기해복제(己亥服制)가 발생했을 때에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여 사람들을 설복시키기도 하였다.
아내는 장수황씨(長水黃氏)로, 주부(主簿) 황수지(黃修之)의 딸이다. 사후 동화사(東華祠)에 배향되었다.
조부는 청죽(聽竹) 성람(成灠)이며, 부친은 선교랑(宣敎郞)을 지낸 성여백(成汝栢)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깨닫는 것이 남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1639년(인조 17)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27위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는데, 초연(愀然)한 모습으로 즐거운 기색이 없이 말하기를 “백패(白牌)에 위호(僞號)가 쓰였는데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가 이것을 전해 듣고 그를 의롭게 여겨, 백패에 위호를 쓰지 않도록 건청(建請)했다고 한다.
1659년(효종 10) 1차 예송논쟁인 기해복제(己亥服制)가 발생했을 때에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여 사람들을 설복시키기도 하였다.
아내는 장수황씨(長水黃氏)로, 주부(主簿) 황수지(黃修之)의 딸이다. 사후 동화사(東華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海東人物志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조양원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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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