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형(李以馨)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74D615B1608X0 |
자(字) | 군실(君實) |
생년 | 1608(선조 4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여주(驪州)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대숙(李大淑) |

[상세내용]
이이형(李以馨)
1608년(선조 41)~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군실(君實)이다.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이대숙(李大淑)이다.
1639년(인조 17) 식년시 생원 3등 57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도사(都使)를 지냈다.
1654년(효종 5)에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죄가 없음을 지지하던 김홍욱(金弘郁)을 잡으라는 명을 지체하였다가 형신(刑訊)을 명받았다. 이 일로 먼 변방으로 유배를 갔는데, 칠십 노모가 있음을 들어 부사직(副司直) 정두경(鄭斗卿)이 풀어줄 것을 상소하였다. 또한, 1655년(효종 6) 사헌부(司憲府)에서 풀어줄 것을 아뢰었다. 1668년(현종 9)에 찬선(贊善) 송준길(宋浚吉)이 다시 등용할 것을 건의하니, 현종이 윤허하였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의금부도사(行義禁府都事) 이대숙(李大淑)이다.
1639년(인조 17) 식년시 생원 3등 57위로 합격하였다. 이후 도사(都使)를 지냈다.
1654년(효종 5)에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죄가 없음을 지지하던 김홍욱(金弘郁)을 잡으라는 명을 지체하였다가 형신(刑訊)을 명받았다. 이 일로 먼 변방으로 유배를 갔는데, 칠십 노모가 있음을 들어 부사직(副司直) 정두경(鄭斗卿)이 풀어줄 것을 상소하였다. 또한, 1655년(효종 6) 사헌부(司憲府)에서 풀어줄 것을 아뢰었다. 1668년(현종 9)에 찬선(贊善) 송준길(宋浚吉)이 다시 등용할 것을 건의하니, 현종이 윤허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孝宗實錄
顯宗改修實錄
孝宗實錄
顯宗改修實錄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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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