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송형구(宋亨久)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A1D615AD6CB1598X0
자(字)태이(泰而)
호(號)송은(松隱)
생년1598(선조 31)
졸년1675(숙종 1)
시대조선중기
본관양주(楊州)
활동분야문관
송사성(宋思誠)

[상세내용]

송형구(宋亨久)
1598년(선조 31)~1675년(숙종 1). 조선 중기 문관. 자는 태이(泰而)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다.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거주지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이다.

부친은 송사성(宋思誠)이다. 동생은 송경구(宋慶久)와 송창구(宋昌久)이다.

1642년(인조 20) 식년시에 생원 3등 17위로 합격하였고, 같은 해 식년시에 진사 3등 15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관상감직장(觀象監直長)‧찰방(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진사 시절부터 역서(曆書)에 관심이 깊어 원나라 허형(許衡)이 만든 대통력(大統曆)과 명나라 때 독일 선교사 아담 샬의 시헌력(時憲曆)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였다. 시헌력이 1644년(인조 22) 조선에 전해진 후 1653년(효종 4)부터 널리 사용되었는데 평소 시헌력에 비해 대통력이 더욱 정확하다고 생각하여 대통력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는 방도를 찾아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1661년(현종 2) 전관상감직장으로서 음력과 양력이 더해져 24절기에 맞추어 제정된 시헌력을 폐지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음력 대통력(大統曆)을 사용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관상감에서 일식(日蝕)과 월식(月蝕)을 통해 역수(曆數)의 차이를 조사한 결과 대통력이 시헌력에 비해 오차가 크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69년(현종 10) 새로 만들어진 달력의 윤달 계산에 오류가 있음을 상소하여 시헌력의 오차를 관상감에게 조사하게 하였으나 윤달 계산에 오류가 없음이 확인되었다. 1664년(현종 5) 관직에서 물러난 후 안동의 송천읍(松川邑)으로 낙향하여 지역 사림(士林)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학문을 연구할 목적으로 송은정(松隱亭)을 세웠다. 후대에 훼손되었지만 1934년에 후손들이 안동의 서후면(西後面) 태장리(台庄里)로 위치를 옮겨 일제 강점기의 건축양식으로 새로 지었다. 현재 송은정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 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顯宗實錄
顯宗改修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