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민(丁好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D638BBFCB1598X0 |
자(字) | 사명(士明) |
호(號) | 아산(鵝山) |
생년 | 1598(선조 31) |
졸년 | 1678(숙종 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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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정호민(丁好敏)
1598년(선조 31)∼1678년(숙종 4). 조선 중기 학자. 자는 사명(士明)이고, 호는 아산(鵝山)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부친 정인남(丁仁男)과 모친 장사랑(將仕郞) 형관(邢寬)의 딸 성주형씨(星州邢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화순(和順)의 조수성(曺守誠) 등의 격문에 동조하여 이흥발(李興浡)‧최온(崔蘊) 등과 합병하여 북진하였다. 청주(淸州) 서평원(西平原)에서 적을 만나 격전을 벌이고 북진 하던 중 인조가 항복하여 화의(和議)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귀향하였다. 1645년(인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단념하고 백아산(白鵝山)으로 들어가 후생을 양성하며 학문 연구에 힘썼다.
저서로 『아산유고(鵝山遺稿)』가 있다.
부친 정인남(丁仁男)과 모친 장사랑(將仕郞) 형관(邢寬)의 딸 성주형씨(星州邢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독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화순(和順)의 조수성(曺守誠) 등의 격문에 동조하여 이흥발(李興浡)‧최온(崔蘊) 등과 합병하여 북진하였다. 청주(淸州) 서평원(西平原)에서 적을 만나 격전을 벌이고 북진 하던 중 인조가 항복하여 화의(和議)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귀향하였다. 1645년(인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단념하고 백아산(白鵝山)으로 들어가 후생을 양성하며 학문 연구에 힘썼다.
저서로 『아산유고(鵝山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鵝山遺稿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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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