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하(金奏夏)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8FCD558B1591X0 |
| 자(字) | 경화(景和) |
| 생년 | 1591(선조 24)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광산(光山)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김질간(金質幹)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주하(金奏夏)
1591년(선조 24)~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경화(景和)이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부친은 행사간원사간(行司諫院司諫)을 지낸 김질간(金質幹)이다. 동생은 김공하(金貢夏)‧김정하(金鼎夏)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시 생원 3등 14위에 입격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1월 예문관(藝文館) 관원들이 공론(公論)에 따라 서궁(西宮: 인목대비)를 폐출하기를 청할 때 대교(待敎)로서 참여하였다. 다음 해에 사간원정원(司諫院正言)으로서 재차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정권이 바뀌어 삼사(三司)에 있으면서 폐모론에 가담하였다고 하여 삭탈관작되었다. 광해군 대에 봉교(奉敎)‧겸설서(兼說書)‧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 등을 두루 역임하며, 예문관(藝文館)‧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사간원(司諫院)‧홍문관(弘文館) 등 청요직(淸要職)에서 활동하였다.
부친은 행사간원사간(行司諫院司諫)을 지낸 김질간(金質幹)이다. 동생은 김공하(金貢夏)‧김정하(金鼎夏)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시 생원 3등 14위에 입격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1월 예문관(藝文館) 관원들이 공론(公論)에 따라 서궁(西宮: 인목대비)를 폐출하기를 청할 때 대교(待敎)로서 참여하였다. 다음 해에 사간원정원(司諫院正言)으로서 재차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정권이 바뀌어 삼사(三司)에 있으면서 폐모론에 가담하였다고 하여 삭탈관작되었다. 광해군 대에 봉교(奉敎)‧겸설서(兼說書)‧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 등을 두루 역임하며, 예문관(藝文館)‧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사간원(司諫院)‧홍문관(弘文館) 등 청요직(淸要職)에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光海君日記
仁祖實錄
仁祖實錄
[집필자]
이동인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