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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李之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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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실(子實)
호(號)수월당(水月堂)
생년1585(선조 18)
졸년1639(인조 17)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의(全義)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이지영(李之英)
1585년(선조 18) 9월 6일∼1639년(인조 17) 1월 22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실(子實)이고, 호는 수월당(水月堂)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증조부는 이필(李佖)이고, 조부는 이경두(李慶斗)이다. 부친 이종문(李宗文)과 모친 전경창(全慶昌)의 딸 경산전씨(慶山全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치삼(金致三)의 딸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시 병과 30위로 합격하였고, 그해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임용되었다. 1614년(광해군 6) 학록학정(學錄學正)에 임용되었고, 1616년(광해군 8) 함경북도평사(咸鏡北道評事)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1617년(광해군 9)부터 1619년(광해군 11)까지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예조좌랑(禮曹佐郞)‧직강(直講) 등을 역임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성절사서장관(聖節使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고, 그해 호조좌랑(戶曹佐郞)‧직강(直講)에 임명되었으나 광해군 말기에 정치가 혼란해지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1623년(인조 1) 북청판관(北靑判官)에 제수되자 나아가 잘 다스렸다는 평가가 있어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1627년(인조 5) 해직을 청하고서 귀향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1630년(인조 8) 호조좌랑(戶曹佐郞)에 다시 임용되었으나 병으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나, 1623년(인조 1) 울진현령(蔚珍縣令)에 제수되었다. 향년 5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이전(李瑑)‧이유(李瑜)‧이구(李球)이다.

유고로 『수월당집(水月堂集)』이 있는데, 집안사람들의 유고와 함께 『전성세고(全城世稿)』에 실려 전한다.

[참고문헌]

水月堂集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