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문(李顯門)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D604BB38B1577X0 |
| 자(字) | 경숙(慶叔) |
| 생년 | 1577(선조 10) |
| 졸년 | 1618(광해군 10)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전의(全義) |
| 활동분야 | 문신 |

| 부 | 이찬(李璨) |

[상세내용]
이현문(李顯門)
1577년(선조 10)~1618년(광해군 10) 11월 26일.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경숙(慶叔)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출신지는 경기도 여주(驪州)이다.
부친은 이찬(李璨)이고, 형은 이창문(李彰門)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생원 2등 17위로 합격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 이원익(李元翼)의 무죄를 밝히려 여러 진사와 더불어 상소를 올렸고 이후에도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 때문에 신하들이 국문할 것을 청하였는데 유학(幼學)들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저지하려 하였다. 광해군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나 신하들이 국문할 일을 재차 아뢰자 옥에 가두었다.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1618년 11월 26일에 곤장을 맞고 죽었다. 인조 때 지평(持平)으로 추증되었고, 정려(旌閭)되었다. 1624년(인조 2)에는 임금의 명으로 예관(禮官)에 의해 제사가 행해졌다.
부친은 이찬(李璨)이고, 형은 이창문(李彰門)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생원 2등 17위로 합격하였다. 1615년(광해군 7)에 이원익(李元翼)의 무죄를 밝히려 여러 진사와 더불어 상소를 올렸고 이후에도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 때문에 신하들이 국문할 것을 청하였는데 유학(幼學)들이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저지하려 하였다. 광해군이 처음에는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나 신하들이 국문할 일을 재차 아뢰자 옥에 가두었다.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1618년 11월 26일에 곤장을 맞고 죽었다. 인조 때 지평(持平)으로 추증되었고, 정려(旌閭)되었다. 1624년(인조 2)에는 임금의 명으로 예관(禮官)에 의해 제사가 행해졌다.
[참고문헌]
만력 기유 사마 강목
광해군일기
여지도서
광해군일기
여지도서
[집필자]
구은희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