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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남(黃吉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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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경(仲慶)
생년1564(명종 19)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회덕(懷德)
활동분야문관
황삼성(黃三省)

[상세내용]

황길남(黃吉男)
1564년(명종 19)~미상. 조선 중기 문관. 자는 중경(仲慶)이다. 본관은 회덕(懷德)이고, 거주지는 한양이다.

부친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지제교(知製敎) 황삼성(黃三省)이고, 형은 황준남(黃俊男)이다.

1616년(광해군 8) 증광시에서 생원 3등 43위로 합격하였고, 음직으로 관직에 올라 부솔(副率) 등을 역임하였다.

1621년(광해군 13) 부솔 재임 시절, 집안의 노비가 땔감을 구하기 위해 좌승지(左承旨) 이위경(李偉卿)의 집 근처를 지나가다가 소를 훔쳐갔다는 누명을 썼는데, 이위경의 노비들이 황길남(黃吉男) 의 집에 쳐들어와서 집안에 있던 부인의 버선과 치마를 벗기면서 능욕하였고, 매어 놓았던 소를 끌고 가버렸으며, 노비는 두들겨 팬 후 포도군관(捕盜軍官)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낸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이 있은 얼마 후 도승지(都承旨) 유경종(柳慶宗)의 집에도 이위경의 노비들이 쳐들어가서 비슷한 행패를 부린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을 조사할 때 황길남은 상소문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이 일로 이위경은 추고(推考)되고, 이위경의 노비들은 옥에 갇혔다. 그러나 사간원(司諫院)에서는 일개 음직으로 관직에 오른 사람이 송사를 벌이고 조정에까지 알린 죄를 물어 사판(仕版)에서 이름을 제거할 것을 청해왔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아 사판에서 이름이 삭제되지는 않았다.

[참고문헌]

CD-ROM 司馬榜目
光海君日記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