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삼(尹起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AE30C0BCB1563X0 |
자(字) | 성임(聖任) |
생년 | 1563(명종 1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활동분야 | 무신 |

부 | 윤원룡(尹元龍) |

[상세내용]
윤기삼(尹起三)
1563년(명종 18)~미상. 조선 후기 무신. 자는 성임(聖任)이다.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거주지는 경(京; 서울)이다.
부친은 윤원룡(尹元龍)이다. 형은 윤응삼(尹應三)이고, 동생은 윤진삼(尹進三)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시에 진사 3등 20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낭청(郎廳)‧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 낭청(郎廳)으로 재직하였을 당시 대북파가 영창대군과 반대파인 서인‧남인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계축(1613년, 광해군 5)‧갑인년(1614년, 광해군6)의 옥사를 추국할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승급하고 서용되었다. 1616년(광해군 8) 의금부도사로서 최기(崔沂)와 형리(刑吏)‧집장사령(執杖使令)의 체포를 지체하였다는 죄목으로 국문을 당하고 정죄(定罪)되었다. 이것을 억울하게 여긴 아들 윤인(尹)이 상소하여, 역적 윤남(允男)을 체포한 공로를 미루어 살펴서 부친의 공훈을 다시금 검토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로 인해 다시 도사로 복직되었다.
부친은 윤원룡(尹元龍)이다. 형은 윤응삼(尹應三)이고, 동생은 윤진삼(尹進三)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시에 진사 3등 20위로 합격하였다.
관직은 낭청(郎廳)‧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1615년(광해군 7) 낭청(郎廳)으로 재직하였을 당시 대북파가 영창대군과 반대파인 서인‧남인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계축(1613년, 광해군 5)‧갑인년(1614년, 광해군6)의 옥사를 추국할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승급하고 서용되었다. 1616년(광해군 8) 의금부도사로서 최기(崔沂)와 형리(刑吏)‧집장사령(執杖使令)의 체포를 지체하였다는 죄목으로 국문을 당하고 정죄(定罪)되었다. 이것을 억울하게 여긴 아들 윤인(尹)이 상소하여, 역적 윤남(允男)을 체포한 공로를 미루어 살펴서 부친의 공훈을 다시금 검토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로 인해 다시 도사로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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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