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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해(李大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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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종(百宗)
생년1562(명종 17)
졸년1590(선조 23)
시대조선중기
본관여주(驪州)
활동분야문신
이광헌(李光軒)

[상세내용]

이대해(李大海)
1562년(명종 17)~1590년(선조 23).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백종(百宗)이다. 본관은 여주(驪州)이고, 출신지는 경기도 광주(廣州)이다.

증조부는 이사경(李師瓊)이고, 조부는 이수(李遂)이며, 부친은 이광헌(李光軒)이다. 외조부는 종실 영원군(寧原君) 이인수(李仁壽)이고, 처부는 허준(許準)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에서 병과 16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583년(선조 16) 4월 예문관한림(藝文館翰林)으로 추천되었고, 1584년(선조 17) 11월 선조가 삼정승에게 어진 인재를 추천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 우의정(右議政) 정유길(鄭惟吉)의 추천을 받았다. 1585년(선조 18)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송강(松江) 정철(鄭澈)‧사암(思菴) 박순(朴淳)의 공을 논한 서인(西人) 명곡(鳴谷) 이산보(李山甫)를 탄핵하고, 서인인 복암(復庵) 박점(朴漸)을 도승지(都承旨)에 임명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서반직(西班職) 오위도총부사과(五衛都摠府司果)로 좌천되었다. 1587년(선조 20) 3월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로 가는 도중 황해도 황주(黃州)에서 사적인 일로 홍여해(洪汝海)에게 곤장을 남발하여 죽인 죄로 처벌되었지만, 그해 7월에 사간원정언에 복직되었다. 1588년(선조 21) 형조정랑(刑曹正郞)으로 있을 때, 북병사 이일(李鎰)의 시전(時餞) 부락을 섬멸한 공로를 위로하는 잔치에 경관(京官)의 자격으로 내려가 주관하였다. 1589년(선조 22) 인백(仁伯) 정여립(鄭汝立) 일당의 체포를 독려하기 위한 독포어사(督捕御史)로 전라도에 파견되었고,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에 임명되었다.

1590년(선조 23) 종계개정(宗系改正)과 관련한 표창에서 광국원종일등훈(光國原從一等勳)의 녹권과 가선대부(嘉善大夫)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증직되었다.

묘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에 있다.

아들은 이덕총이다.

[참고문헌]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