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부(李克扶)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F9BD80B1555X0 |
자(字) | 자정(子正) |
호(號) | 칠매헌(七梅憲) |
생년 | 1555(명종 1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이응종(李應鍾) |
출신지 | 전라남도 영광(靈光) |

[상세내용]
이극부(李克扶)
1555년(명종 10)∼미상.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칠매헌(七梅憲)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전라남도 영광(靈光) 출신이다.
이응종(李應鍾)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이극조(李克操), 이극지(李克持), 동생은 이극양(李克揚), 이극정(李克挺)이다.
1588년(선조 21)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 27위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남도 광주(光州)의 의병소(義兵所)에 군량(軍糧)을 보내는 등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당시 붕당(朋黨)의 세력 다툼으로 정세가 어지러움을 보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응종(李應鍾)의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이극조(李克操), 이극지(李克持), 동생은 이극양(李克揚), 이극정(李克挺)이다.
1588년(선조 21) 무자(戊子)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3등 27위로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전라남도 광주(光州)의 의병소(義兵所)에 군량(軍糧)을 보내는 등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당시 붕당(朋黨)의 세력 다툼으로 정세가 어지러움을 보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영광읍지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jsp)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http://people.aks.ac.kr/index.jsp)
[집필자]
유치석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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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