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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복흥(南復興)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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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기부(起夫)
생년1553(명종 8)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의령(宜寧)
활동분야문신
남맹하(南孟夏)

[상세내용]

남복흥(南復興)
1553년(명종 8)~미상. 조선 중기 문신. 자는 기부(起夫)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증조부는 남효의(南孝義)이고, 조부는 남경춘(南慶春)이다. 부친 수의부위(修義副尉) 충의위(忠義衛) 남맹하(南孟夏)와 모친 정승휴(鄭承休)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남복시(南復始)이다. 부인은 박귀원(朴貴元)의 딸이다.

1576년(선조 9) 식년시에서 생원 3등 52위로 합격하였고, 1579년(선조 12)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20위로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달아난 병사들을 재정비하여 수천 명을 모아 대보산(大寶山) 서쪽과 적교포(狄橋浦)에 진을 쳐서 적병들이 대동강 서쪽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또한, 이듬해 정월에 명군과 연합하여 평양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웠다. 비변사(備邊司)를 통해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품계를 올려 받았다. 1593년(선조 26)에는 강릉부사(江陵府使)로 재직 중이었는데, 사간원(司諫院)으로부터 성격이 거칠고 술에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받았다. 또한 사헌부(司憲府)를 통해서도 성격이 포악하며 백성들을 수탈한다는 내용으로 탄핵을 받았다. 이후에도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중국 장수들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 품계를 올려 받았는데, 사간(司諫) 남근(南瑾)은 그가 시행한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직무인데, 공적이 부풀려져 유례가 없는 품계의 승격을 받았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司馬榜目
宣祖實錄

[집필자]

정병섭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