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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억창(李億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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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응성(應盛)
생년1547(명종 2)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무신
이권(李權)

[상세내용]

이억창(李億昌)
1547년(명종 2)~미상. 조선 중기 무신. 자는 응성(應盛)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부친은 창선대부(彰善大夫) 행임계부령(行臨溪副令) 이권(李權)이다. 형은 이억경(李億慶)이다.

1588년(선조 21) 식년시에서 병과 10위로 무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충의위(忠義衛)‧훈련도감낭청(訓練都監郎廳)‧교동현감(喬桐縣監)‧옹진현령(甕津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선조 30) 훈련도감낭청 재임 시절 나무를 함부로 베지 말라는 법을 어기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소나무를 벌목하여 기생집으로 날랐던 사실이 단속 관원들에게 발각되었는데, 도리어 단속 관원들을 협박하고 뻔뻔하게 응하다가 파직되었다. 1599년(선조 32) 교동현감 재임 시절 두서없이 업무처리를 하고 농사철에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시켰다. 평소 백성들의 농토를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등 위법을 일삼던 교동의 부호 고언백(高彦伯)이 아들 고덕준(高德濬)을 앞세우고 찾아와서 강도 높은 부역에 항의하며 이억창을 구타한 일이 벌어졌다. 1602년(선조 35) 임금이 옹진현령에 제수를 명하자 인품도 좋지 않고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간원(諫院)의 체직요청이 수차례 지속되면서 체직되었다.

[참고문헌]

萬曆戊子文武榜目
宣祖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