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언(陳漢彦)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9C4D55CC5B8B1549X0 |
자(字) | 실혜(實兮) |
호(號) | 극재(克齋) |
생년 | 1543(중종 38) |
졸년 | 1593(선조 2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여양(驪陽)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상세내용]
진한언(陳漢彦)
1543년(중종 38)∼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 무신‧의병장. 자는 실혜(實兮)이고, 호는 극재(克齋)이다. 부친 참봉 진석창(陳碩昌)과 모친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사(經史)와 사장(詞章)에 뛰어났으나 문과에 응시하여 두 번 실패한 이후 무예를 닦아 1583년 무과에 합격하여 효력부위(效力副尉)가 되어 북변(北邊)에 배치되었다. 북쪽 호인이 쳐들어 왔을 때 많은 수의 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우고 포상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낙동강을 따라 성주(星州)‧대구(大邱)‧개령(開寧) 등지에서 적을 무찔러 공적을 세웠다. 이후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진주성(晉州城)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유고로 『극재실기(克齋實紀)』 1책이 남아 있다.
경사(經史)와 사장(詞章)에 뛰어났으나 문과에 응시하여 두 번 실패한 이후 무예를 닦아 1583년 무과에 합격하여 효력부위(效力副尉)가 되어 북변(北邊)에 배치되었다. 북쪽 호인이 쳐들어 왔을 때 많은 수의 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우고 포상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여 낙동강을 따라 성주(星州)‧대구(大邱)‧개령(開寧) 등지에서 적을 무찔러 공적을 세웠다. 이후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진주성(晉州城)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유고로 『극재실기(克齋實紀)』 1책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克齋實紀
[집필자]
김혜영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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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