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두(南宮斗)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0A8AD81B450B1528X0 |
생년 | 1526(중종 21) |
졸년 | 1620(광해군 12) |
시대 | 조선전기 |
활동분야 | 기타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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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도 함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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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남궁두(南宮斗)
1526년(중종 21)∼1620년(광해군 12). 조선 전기 단학파(丹學派)의 한 사람. 전라도 함열 출신.
1555년(명종 10)에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임파(臨陂)에서 살다가 애첩과 당질간의 간통사건으로 두 사람을 살해하고 중이 되었다. 법명을 총지(摠持)라 하고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에서 은거하였다.
『해동이적(海東異蹟)』에 의하면 후에 경상도 의령의 한 암자에서 지낼 때 부주(符呪)‧상위(象緯)‧감여(堪輿)‧추점(推占) 등 도교의 방술에 뛰어난 노승을 무주 부근에서 만나 신선술을 익혔다.
먼저 정신통일을 하기 위하여 잠 안 자는 법을 익히고, 다음 벽곡(辟穀: 곡기를 끊음)하면서 『참동계(參同契)』와 『황정경(黃庭經)』의 묘리를 터득하였고, 이를 운용하여 내단수련(內丹修鍊: 호흡법 등으로 장수를 누리려는 도교 수련법의 일종)의 극치인 신태(神胎) 일보 직전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따르면 그의 나이가 90살이 되었어도 거의 늙지를 않았고, 언제나 명산대천을 떠돌아다녀 사람들은 그를 지선(地仙)이라 하였다고 한다.
1555년(명종 10)에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임파(臨陂)에서 살다가 애첩과 당질간의 간통사건으로 두 사람을 살해하고 중이 되었다. 법명을 총지(摠持)라 하고 지리산 쌍계사(雙溪寺)에서 은거하였다.
『해동이적(海東異蹟)』에 의하면 후에 경상도 의령의 한 암자에서 지낼 때 부주(符呪)‧상위(象緯)‧감여(堪輿)‧추점(推占) 등 도교의 방술에 뛰어난 노승을 무주 부근에서 만나 신선술을 익혔다.
먼저 정신통일을 하기 위하여 잠 안 자는 법을 익히고, 다음 벽곡(辟穀: 곡기를 끊음)하면서 『참동계(參同契)』와 『황정경(黃庭經)』의 묘리를 터득하였고, 이를 운용하여 내단수련(內丹修鍊: 호흡법 등으로 장수를 누리려는 도교 수련법의 일종)의 극치인 신태(神胎) 일보 직전까지 도달하였다고 한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따르면 그의 나이가 90살이 되었어도 거의 늙지를 않았고, 언제나 명산대천을 떠돌아다녀 사람들은 그를 지선(地仙)이라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海東傳道錄
海東異蹟
海東異蹟
[집필자]
차주환(車柱環)
대표명 | 남궁두(南宮斗) |
성명 | 남궁두(南宮斗) |
성명 : "남궁두(南宮斗)"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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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