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소(鄭從韶)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C885C18CU9999X0 |
| 자(字) | 가정(可貞) |
| 호(號) | 정헌(靖軒)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전기 |
| 본관 | 영일(迎日)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종소(鄭從韶)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 유학자‧문신. 자는 가정(可貞)이고, 호는 정헌(靖軒)이다. 본관은 영일(迎日)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천(永川)이다.
조부는 정정(鄭井)이고, 부친은 정회형(鄭淮衡)이다. 부인은 윤통(尹統)의 딸 평산윤씨(平山尹氏)이다.
1447년(세종 29) 중시 을과 3위로 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문과 급제하였다. 이조좌랑(吏曹佐郞)‧성균관역전랑(成均館歷詮郞) 등 요직을 역임하던 중, 단종 복위운동으로 인한 병자옥사(丙子獄死)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그 후 조정으로부터 사간원좌헌납(司諫院左獻納) 등의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만년에 김종직(金宗直)의 권유로 영천군수(榮川郡守)‧예천군수(醴泉郡守)‧함양군수(咸陽郡守) 등 외직을 주로 역임하다가,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으로 입조(入朝)한 후 경연(經筵)에서 성종을 대상으로 강연하였다. 이후에도 전라도진휼사(全羅道賑恤使)‧종사관(從事官)‧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등을 지냈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정이교(鄭以僑) 등이 있다.
충청남도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 서무(西廡)에 배향되었다.
시문집으로 2권의 『오천금석록(烏川金石錄)』이 전한다.
조부는 정정(鄭井)이고, 부친은 정회형(鄭淮衡)이다. 부인은 윤통(尹統)의 딸 평산윤씨(平山尹氏)이다.
1447년(세종 29) 중시 을과 3위로 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함께 문과 급제하였다. 이조좌랑(吏曹佐郞)‧성균관역전랑(成均館歷詮郞) 등 요직을 역임하던 중, 단종 복위운동으로 인한 병자옥사(丙子獄死)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그 후 조정으로부터 사간원좌헌납(司諫院左獻納) 등의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만년에 김종직(金宗直)의 권유로 영천군수(榮川郡守)‧예천군수(醴泉郡守)‧함양군수(咸陽郡守) 등 외직을 주로 역임하다가, 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으로 입조(入朝)한 후 경연(經筵)에서 성종을 대상으로 강연하였다. 이후에도 전라도진휼사(全羅道賑恤使)‧종사관(從事官)‧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등을 지냈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로 정이교(鄭以僑) 등이 있다.
충청남도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 서무(西廡)에 배향되었다.
시문집으로 2권의 『오천금석록(烏川金石錄)』이 전한다.
[참고문헌]
[집필자]
유치석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10-10-23 | 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