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李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C9D1FFFFB1524X0 |
호(號) | 둔헌(遯軒) |
생년 | 1434(세종 16) |
졸년 | 1482(성종 1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아산(牙山) |
활동분야 | 문신 |

부 | 이달손(李達孫) |

[상세내용]
이집(李緝)
1434년(세종 16)~1482년(성종 13). 조선 전기 문신. 호는 중화당(中和堂)‧둔헌(遯軒)이다. 본관은 아산(牙山)이다.
고려 시대 문신인 이주좌(李周佐)의 먼 후손이다. 부친은 이달손(李達孫)이다.
20세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옹부정(司饔副正)을 역임하였고, 성균관에서 유생을 가르쳤다.
단종(端宗)이 임금의 자리를 세조(世祖)에게 양위한 뒤 호려(胡戾) 이염의(李念義)와 함께 인왕산 인근에 은거하였고, 자신의 호를 ‘중화당(中和堂)’이라 지었다.
이후 단종의 승하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통곡한 뒤 가족과 함께 황해도 봉산(鳳山)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절령산(岊嶺山: 현 황해도 자비령(慈悲嶺)) 산 중에서 다시 ‘돈헌(遯軒)’으로 호를 고쳤다.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 등과 더불어 기풍과 절개로 이름이 높았다.
슬하에 4남을 두었다.
고려 시대 문신인 이주좌(李周佐)의 먼 후손이다. 부친은 이달손(李達孫)이다.
20세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옹부정(司饔副正)을 역임하였고, 성균관에서 유생을 가르쳤다.
단종(端宗)이 임금의 자리를 세조(世祖)에게 양위한 뒤 호려(胡戾) 이염의(李念義)와 함께 인왕산 인근에 은거하였고, 자신의 호를 ‘중화당(中和堂)’이라 지었다.
이후 단종의 승하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통곡한 뒤 가족과 함께 황해도 봉산(鳳山)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절령산(岊嶺山: 현 황해도 자비령(慈悲嶺)) 산 중에서 다시 ‘돈헌(遯軒)’으로 호를 고쳤다.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 등과 더불어 기풍과 절개로 이름이 높았다.
슬하에 4남을 두었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후남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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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1 | 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