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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독서(賜暇讀書)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직
중분류동반
소분류문관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젊은 문신(文臣)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이다.

1426년(세종 8) 집현전 학사 중에서 젊고 재주가 있는 자를 골라 관청의 공무에 종사하는 대신 집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1442년부터는 진관사(津寬寺)에서 독서하게 하였기 때문에 상사독서(上寺讀書)라 불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고, 1476년(성종 7) 다시 부활하였고, 1483년(성종 14)에 용산(龍山)의 빈 사찰을 수리하여 국왕이 독서당(讀書堂)이라는 편액을 내려 사가독서 하는 장소로 쓰도록 하였다. 이곳을 남호당(南湖堂) 또는 용호당(龍湖堂)이라고 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이후 폐지되었다.

중종이 즉위한 뒤 사가독서에 관한 절목을 마련하도록 지시하면서 다시 시행되었다. 1507년(중종 2)에 정업원(淨業院)에 설치하였다가 1517년(중종 12) 두모포(豆毛浦:옥수동)에 다시 독서당을 지었는데, 이곳을 동호당(東湖堂)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명맥만 이어오다가 정조(正祖)가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기록에 나타난 총인원은 1426년(세종 8)~1773년(영조 49)까지 48차례 320명이다. 사가독서에 뽑힌 자를 사가문신이라고 불렀는데 상당한 영예로 간주되었다. 대제학(大提學)의 경우 독서당을 거친 사람만을 임명할 수 있게 제도화하여 독서당의 권위를 높였다.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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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