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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직
중분류동반
소분류문관

[품계]

종2품(從二品)

[상세내용]

조선시대 사헌부의 으뜸 벼슬로 종이품(從二品)이며, 정원은 1원이다. 현실 정무(政務)를 논평하고, 모든 관료를 규찰(糾察)하며 풍속을 바로 잡고, 억울함을 풀며 외람되고 거짓된 것을 금하는 등의 일을 관장한다.

사헌부의 장(長)으로, 그 밑에 있는 집의(執義:從三品) 1원, 장령(掌令:正四品), 지평(持平:正五品) 각 2원, 감찰(監察:正六品) 13원을 감독하고 통솔하였다.

대사헌 이하 집의‧장령‧지평까지의 사헌부 소속의 관원을 통칭 대관(臺官)이라고 하였으며, 또 장령과 지평을 별칭 대장(臺長)이라고 하였으며, 학문(學問)과 덕행(德行)이 뛰어나 이조(吏曹)에서 대관으로 추천(推薦)된 사람을 남대(南臺)라고 하였다.

모든 대관은 사헌부의 청환직(淸宦職)으로, 문과 급제자 중 청렴 강직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므로, 승문원(承文院), 성균관(成均館), 홍문관(弘文館) 등을 거친 젊고 기개가 있는 인재들이 임명되었는데, 그만큼 직무가 막중하기 때문이었다. 이조의 전랑(銓郞)과 함께 전 조선시대의 사족사회(士族社會)의 틀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였다.

사헌부의 직제(職制)는 고려의 관제를 이어오다가 조선시대 초기 사헌‧중승(中丞)‧겸중승(兼中丞)‧시사(侍史)‧잡단(雜端)‧감찰 등의 관원을 두었었다. 대사헌은 도헌(都憲), 대헌(大憲)이라고 하였으며, 버금 벼슬인 집의는 1401년(태종 1)에 중승을 고쳐 부른 이름이며, 장령은 시사를 고쳐 부른 이름으로, 장헌시사(掌憲侍史)라고 하였으며, 지평은 잡단을 고쳐 부른 이름으로, 지헌잡단(持憲雜端)이라고 하였으며, 감찰은 전중어사(殿中御史)라 하여, 처음에 25원을 두었다가 세조(世祖) 이후에 그 수를 줄여 13원을 두었다.

[별칭]

대헌(大憲), 도헌(都憲)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