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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校理)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직
중분류동반
소분류문관

[품계]

정‧종5품(正‧從五品)

[상세내용]

조선시대 집현전(集賢殿)‧홍문관(弘文館)‧승문원(承文院)‧교서관(校書館) 등에 둔 정‧종오품(正‧從五品) 관직이다.

정원은 관청에 따라 달라서 교서관에는 1원을 두었으나, 집현전‧홍문관‧승문원에는 2원씩 배정하였다. 또 벼슬의 품계도 달라서 집현전‧홍문관의 교리는 정오품(正五品) 관직이었으나, 승문원‧교서관의 교리는 종오품(從五品) 관직이었다.

집현전교리(集賢殿校理:正五品)는 1399년(정종 1)에 처음 설치되었으나 이름뿐이었다. 그 후 1420년(세종 2)에 세종이 집현전을 재건하면서 정원도 2원으로 늘어나고 기능도 강화되었으나 다시 집현전이 폐지되면서 교리도 없어졌다.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正五品)는 1470년(성종 1)에 집현전의 성격을 계승한 홍문관이 설치되면서 2원으로 구성되어, 주로 문한(文翰)에 관련된 일을 담당하였다. 또 모두 동반(東班:文官)을 임용하였고, 경연관(經筵官)‧사관(史官)‧지제교(知製敎)를 정례대로 겸임하였으며,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과 함께 삼사(三司)의 일원으로 간언(諫言) 활동에 참여하였다. 부교리(副校理:從五品)‧수찬(修撰:正六品)‧부수찬(副修撰:從六品)과 함께 서벽(西壁)이라고 칭하여졌고, 통칭 옥당(玉堂)이라 불렸다.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從五品)는 1409년(태종 9)에 고려의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개편, 강화하면서 처음 설치되었다. 다음해 문서응봉사는 승문원으로 개칭되고, 교리의 정원도 2원으로 늘어났다. 승문원은 외교문서 작성과 검토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으나, 중종 이후 폐지되었다.

교서관교리(校書館校理:從五品)는 1401년(태종 1)에 교서감을 교서관으로 개편하면서 새로 설치되었다. 주로 도서의 간행‧향축(香祝)‧인문(印文)의 필사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교서관은 장관인 판교(判校:正三品 堂下)가 다른 관원이 겸임하는 직책으로 중기 이후에는 폐지되었으므로 교서관의 실질적 책임자는 교리였다. 따라서 직무가 중요하고 복잡하였는데, 중기에는 겸교리 3원이 새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1750년(영조 26)에 들어와 2명으로 줄어들었고, 나중에 교서관이 규장각 외각으로 편입되면서는 겸교리 1명은 규장각 직각(直閣:從六品∼正三品 堂下)이 겸임하였다. 관장 하에 분장(分掌)으로 책색(冊色)과 수포색(收布色)이 있었다.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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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