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수영(水營)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서
중분류외관
소분류서반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전임(全任) 수군절도사의 군영이다. 조선시대 수군체제는 1457년(세조 3) 진관체제(鎭管體制)를 확립하면서 각 도 수군지휘관의 명칭을 수군절도사로 통일했다. 수사(水使)는 대개 1원은 관찰사가 겸임하고, 1원은 전임자로 배치했다. 강원도와 함경도‧평안도 등 해양방위보다 육로의 방비가 중시되었던 지역에서는 관찰사가 수사를 겸했을 뿐 전임 수사가 편성되지 않았다. 또 경상도‧전라도 등과 같이 해양방위가 보다 중시된 지역은 관찰사가 겸하는 수사 이외에 전임 수사가 2원 배정되기도 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경기도는 남양(南陽) 화량만(花梁灣), 충청도는 보령(保寧), 경상좌수영은 동래(東萊:釜山), 경상우수영은 거제(巨濟) 가배량(加背梁), 전라좌수영은 순천(順天:麗水) 오동포(烏桐浦), 전라우수영은 해남(海南)에 두었다.

이들은 지역으로 분할된 단점이 있었으므로 임진왜란 때인 1593년(선조 26)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설치하고 수군통제영(水軍統制營)을 두었다. 통제영은 방어에 유리한 입지조건에 따라 한산도‧여수‧고성(固城)‧충무 등으로 옮겨지면서 존속하다가 1895년(고종 32) 칙령에 따라 폐영 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관청으로서 기능하였다.

1633년(인조 11)에는 경기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옮겨지면서, 경기도‧충청도‧황해도를 총괄하는 삼도통어영(三道統禦營)이 설치되었다. 통어사(統禦使)는 1명으로 경기수사가 겸임했다. 이들은 각각 우후(虞侯:正四品)‧중군(中軍:從二品)‧천총(千摠:正三品 堂上) 등의 속료와 함대, 직속군을 거느렸다.

수영에는 모두 석성(石城)을 구축하고, 직속군을 두었다. 직속군과 속읍‧속진의 군선(軍船)‧병력은 모두 정액이 있었다. 수영은 이들 군선, 무기의 관리, 군사훈련, 순찰의 임무를 맡았다. 이중 특히 중요한 임무는 선박의 건조와 수리였다. 각 도의 수영에는 전선(戰船)‧방선(防船)‧병선(兵船) 등의 배들이 소속되었는데, 수영에 따라 각기 선박을 개조해야 할 시기가 정해져 있었다. 이를 위해 수영은 독자적인 산림(주로 소나무 숲)을 보유했다. 1907년(융희 1) 군대해산령에 따라 수영은 폐지되었다.

[별칭]

-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