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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영(龍虎營)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서
중분류경관
소분류서반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궁궐의 숙위(宿衛)와 왕가(王駕)의 호종(扈從)을 맡은 군영으로 1755년(영조 31)에 금군청(禁軍廳)을 하나의 독립 군영으로 만들면서 용호영으로 고쳤다. 금군청 때부터 둔 내금위(內禁衛)‧우림위(羽林衛)‧겸사복(兼司僕) 3위가 있다.

1881년(고종 18)에 훈련도감‧호위청과 합하여 무위영(武衛營)으로 개편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6월에 임오군란으로 다시 구제(舊制)로 복구, 1891년(고종 28)에 약화된 금군의 강화책에 따라 친군(親軍) 용호영으로 개편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통위영(統衛營)으로 병합하였다.

용호영(龍虎營) 관원으로 금군별장(禁軍別將:從二品) 1원, 장(將:正三品)이 6원인데 겸사복장(兼司僕將) 2인, 내금위장(內禁衛將) 2인, 우림위장(羽林衛將) 2인이며, 당상군관(堂上軍官) 16원, 교련관(敎鍊官) 14원, 별부료군관(別付料軍官) 120원으로 되어 있다. 잡직(雜職)으로 금군정(禁軍正:從六品)과 금군령(禁軍領:從九品)이 있었고, 군총(軍摠)으로는 내금위(內禁衛) 200인, 우림위(羽林衛) 200인, 겸사복(兼司僕) 200인, 합쳐서 육번(六番) 중 선천취재(宣薦取才) 40인, 부천추재(副薦取才) 15인, 육번액외(六番額外) 50인, 표하군(標下軍) 286명, 마의(馬醫) 2인, 화포(火砲) 5인, 호연대(扈輦隊) 427명이 있었다. 이속(吏屬)으로 서원(書員) 5인, 방직(房直) 1명이 있어 서원은 병조일군색(兵曹一軍色)의 서리(書吏)를 윤차(輪次)로 차출하였다.

[별칭]

내삼청(內三廳), 금군청(禁軍廳)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