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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관(藝文館)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서
중분류경관
소분류동반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사명(辭命:제후 간에 쓰이는 수사(修辭)와 언어(言語)로서 간혹 사령(辭令)과 혼용)을 제찬(制撰)하는 일을 관장한다. 1392년(태조 1)에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을 두었는데, 1401년(태종 1)에 예문관(藝文館)과 춘추관(春秋館)으로 분리 독립시켰다. 1894년(고종 31)에 예문관을 경연청(經筵廳)에 통합하였다.

예문관 관원으로는 영사(領事:正一品)가 1원으로 영의정(領議政)이 예겸하며, 대제학(大提學:正二品), 제학(提學:從二品) 각 1원, 직제학(直提學:正三品 堂下) 1원[대전회통에서 폐지], 응교(應敎:正四品) 1원, 봉교(奉敎:正七品), 대교(待敎:正八品) 각 2원이며, 검열(檢閱:正九品)이 4원으로 되어 있다.

모두 문관을 임용하며, 응교 이상의 관원은 타관이 겸직했다. 대제학이 문한을 주관하였다. 대제학은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이 겸임하였으며, 문형(文衡)이라 하였고, 제학은 문임(文任)이라고 하였으며, 대제학과 제학을 관각당상(館閣堂上)이라 일컬었으며, 직제학은 도승지(都承旨)가 겸직하였다. 응교는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正三品) 이하 교리(校理:正五品)까지의 관원 중에서 뽑았으며, 봉교, 대교, 검열을 통칭 8한림(八翰林)이라 하고 상하번(上下番)으로 나누어서 좌‧우사(左右史)를 삼았으며, 또 사신(史臣)이라고 하였다. 이속(吏屬)으로 서리(書吏) 4인[경국대전에서 10인이었으나 속대전에서 4인으로 감원, 대전회통에서 7인으로 증원], 동자유연직(童子鍮硯直) 4명, 실록각직(實錄閣直) 2명, 사령(使令) 5명, 군사(軍士) 2명, 수공(水工) 2명이 있었다.

[별칭]

문원(文苑), 한림원(翰林院), 원봉성(元鳳省), 사림원(詞林院), 문한서(文翰署)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