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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承政院)

[요약정보]

시대조선(朝鮮)
대분류관서
중분류경관
소분류동반

[품계]

[상세내용]

조선시대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으로 왕명의 출납(出納)을 관장하였다. 1392년(태조 1) 건국 초에는 중추원(中樞院)에서 군기(軍機)에 관한 일과 더불어 왕명의 출납을 위해 속아문으로 승지방을 두고, 도승지(都承旨:正三品)를 장관으로 하였다. 1400년(정종 2)에 군기에 관한 권한을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이관하면서 승정원(承政院)을 따로 설치하였다.

1401년(태종 1)에 의흥삼군부를 승추부(承樞府)로 개편하면서 도승지를 지신사(知申事), 승지를 대언(代言)으로 개칭하여 다시 통합하였다가 1405년(태종 5)에 다시 승추부가 병조(兵曹)에 흡수된 뒤에 다시 승정원으로 독립한 것으로 지신사, 좌‧우대언, 좌‧우부대언(副代言) 및 당후관(堂後官)과 동부대언(同副代言)을 새로 두었다.

1433년(세종 15)에 지신사를 도승지로, 대언을 승지로 고쳐 승정원 제도를 완비하여 육조의 업무를 분담하였다. 즉 도승지는 이조, 좌승지(左承旨)는 호조, 우승지(右承旨)는 예조, 좌부승지(左副承旨)는 병조, 우부승지(右副承旨)는 형조, 동부승지(同副承旨)는 공조를 맡았으며 이를 이방‧호방‧예방‧병방‧형방‧공방의 6방이라 하였다. 1894년(고종 31)에 승선원(承宣院)으로 고쳤다.

승정원 관원으로는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인 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 각 1원과 주서(注書:正七品) 2원을 두었다. 속대전(續大典)에서는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正七品) 1원을 더 두었다. 이속(吏屬)으로 서리(書吏) 25인[경국대전에서는 28인], 사령(使令) 35인, 인배(引陪) 6명, 수공(水工) 2명, 군사(軍士) 3명, 대루청군사(待漏廳軍士) 2명을 두었다.

당하관은 모두 문관을 임용하였는데, 승지는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겸하는 것이 상례였다. 또한 도승지는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을 겸하며 지제교(知製敎)가 되고, 상서원정(尙瑞院正)을 겸하였으며, 승지 가운데에서 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사옹원(司饔院)의 부제조(副提調)를 겸하게 하기도 하였다. 또 형방승지(刑房承旨)는 전옥서제조(典獄署提調)를 겸하였다. 승지는 홍문록(弘文錄)에 등재되지 못한 사람은 임명될 수 없었다.

[별칭]

은대(銀臺), 후원(喉院), 대언사(代言司), 정원(政院)

[참고문헌]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을 통해 최초 등록하였습니다.